일지

7/16 스물일곱번째

민윤기 2024. 7. 16. 23:44

하루종일 비가 올듯말듯 한 날씨였다. 오늘은 수술실에 거의 하루종일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나와서 창밖을 볼때마다 비가 시원하게 안오는게 서운했다.

선생님께 가는 길에는 멍때리기에 전념하며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지만 왜인지 '선생님'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꿈에 나와서였을까? '선생님'과 스킨십을 하고 있었고 목자 동기가 옆에서 그걸 보고 화를 버럭 내던 이상한 꿈. 꿈에서의 표상과 실상이 다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또 다시 내 안의 이드와 초자아의 싸움을 나타낸 꿈일지도 모른다. 그 꿈은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인 꿈은 아니었지만 그 꿈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선생님'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생일에 맞춰 연락 온 두 사람에 대해 선생님께 이야기했고, 그들의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허기짐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락해왔을거라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나를 발견했다.그들이 정말 내가 그립거나 필요해서 연락해온거라는 생각을 했기때문에 그들을 외면하는 행동이 조금은 미안했다는 사실을 알수있었는데, 언제쯤 아무렇지 않아질수있을까? 내 인생에서 이제는 죽어 없어진 사람들.

또 새엄마 생각이 났는데, 오늘 과장님하고 이야기 나눈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오전 수술이 늦게끝나서 점심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한채 오후 수술에 들어간 나와 전공의에게 과장님은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질문 덕분에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사실 새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이 미화되었다는걸 인정할수밖에 없는건 소풍가는 날 장염에 걸린 내 도시락에 밥과 계란후라이만 싸줬던 새엄마도 기억한켠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계란후라이.... 그것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빠의 발작버튼을 누른 요소 중 하나였다.
어쨌든 내 기억창고에는 강하고 다부진 엄마의 역할을 해준 사람이라는 것만 남겨놓을 것이다. 그래도 '딸랑구'라는 애칭이 아직도 좀 그립긴 하다. 동생을 데리고 아빠로부터 도망친건 아마 당시에 새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지만 그 최선을 위해서 내가 새엄마와 영영 이별해야 했던건 슬픈일이었고, 어쩌면 영영 이별했기때문에 그리워할 수 있는 새엄마라는 존재, 어떤 면에선 닮고 싶은 수호천사가 될 수 있었을거다.

새엄마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걱정에 대한 과거의 생각, 지금도 조금은 두렵기도 한 나의 마음에 대해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내가 했던 걱정들이나 심지어 동물학대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누구나 다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거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선생님의 병아리 학대사건이 궁금하긴했는데, 내가 한 짓에 비해 너무 작은 학대였으면 진짜 내가 쓰레기가 될 것같아서 마주하고싶지 않았다.

선생님을 자꾸 생각하고 공상과 망상의 경계를 넘나들던 중 큐티 시간에 경고 알람이 울렸다. 예레미야서에서 우상숭배를 일삼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도구로 그들을 징계하셨는데, 결국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고 새언약을 주신 하나님이시지만 정신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20대 초반에 '선생님',  20대 후반에 오빠에 이어 또다시 우상을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들었고 심지어 이건 실제 관계도 아닌 내 상상과 이상화가 결합된 작품(?)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것 같아? 라고 초자아는 날을 세우고 있다. 그치만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걸 어쩌란말이냐......?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20대땐 자발적 독신의 은사를 주장하셨고 30대엔 어떻게든 극복해내겠다고 마음먹으셨다고 해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요???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혼하셨다는 말이 진짜로 나올까봐 불안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결혼하셨을수도, 이혼하셨을수도, 독신으로 살고계실수도 있다. 어떤 선생님이든 관계없이 언젠간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지해주시는 내 앞의 선생님과 작별해야하는 순간이 올거라는걸 알고있다.

수술실에 온 후로는 몸은 좀 더 움직이게되었지만 정신적인 여력이 많이 남아서 허튼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것 같기도 하다. 내 감정과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해야한다는 교훈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되 우상을 세우고있진 않은지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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